한국경제 - 엄태창 기타 ‥ "이름 걸고 좋은 기타 만들어야"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기타를 만든다'는 생각에 사명(社名)을 '엄태창 기타'로 바꾼 것입니다.아버지(엄상옥.1997년 작고) 이름이 담긴 사명을 그대로 유지했다면,혹시라도소비자가 기타에 불만이 있을 때 제가 아닌 아버지를 욕할 것 아닙니까."클래식 기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엄태창'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타 제작회사일 뿐만 아니라 품질이나 가격 측면에서도'국내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500만원짜리 기타를 팔 때조차 단돈 1원도 깎아주지 않는 반면 자신의 이름이새겨진 기타에 대해선 '평생 무료 AS(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엄태창 기타'의 시작은 192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발단은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이었던 엄상옥씨에게 이웃집 형이 들려준 감미로운 기타 소리였다.하루 하루 기타에 빠져들던 엄씨는 "기타를 살 돈이 없으니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홀로 기타 연구에 들어갔고,제법 모양과 음색을갖춘 기타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이때가 1932년이다.하지만 당시는 기타 제작만으로는 '밥벌이'가 안 되던 시절.양말공장을 운영하던 엄씨가 기타로 다시 돌아온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다.화재로 공장을 잃은 엄씨에게 남은 것은 '기타 만드는 손재주'뿐이었고,마침 미군들을 중심으로 기타 수요도 늘어났다.엄씨는 1954년 서울 왕십리에 '다이아몬드 기타'라는 상호를 내걸고 기타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사업은 번창했다.자신감이 붙은 엄씨는 "내 기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1974년 사명을 '엄상옥 기타'로 바꾼다.엄씨가 막내아들인 태창이를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면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게 '네가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기타를 만든다'는 생각에 사명(社名)을 '엄태창 기타'로 바꾼 것입니다.아버지(엄상옥.1997년 작고) 이름이 담긴 사명을 그대로 유지했다면,혹시라도소비자가 기타에 불만이 있을 때 제가 아닌 아버지를 욕할 것 아닙니까."클래식 기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엄태창'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타 제작회사일 뿐만 아니라 품질이나 가격 측면에서도'국내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500만원짜리 기타를 팔 때조차 단돈 1원도 깎아주지 않는 반면 자신의 이름이새겨진 기타에 대해선 '평생 무료 AS(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엄태창 기타'의 시작은 192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발단은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이었던 엄상옥씨에게 이웃집 형이 들려준 감미로운 기타 소리였다.하루 하루 기타에 빠져들던 엄씨는 "기타를 살 돈이 없으니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며 홀로 기타 연구에 들어갔고,제법 모양과 음색을갖춘 기타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이때가 1932년이다.하지만 당시는 기타 제작만으로는 '밥벌이'가 안 되던 시절.양말공장을 운영하던 엄씨가 기타로 다시 돌아온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였다.화재로 공장을 잃은 엄씨에게 남은 것은 '기타 만드는 손재주'뿐이었고,마침 미군들을 중심으로 기타 수요도 늘어났다.엄씨는 1954년 서울 왕십리에 '다이아몬드 기타'라는 상호를 내걸고 기타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사업은 번창했다.자신감이 붙은 엄씨는 "내 기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1974년 사명을 '엄상옥 기타'로 바꾼다.엄씨가 막내아들인 태창이를 후계자로 생각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면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게 '네가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싫었어요."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소망을 저버리고 1970년대 말 청년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다.표구 사업으로 한때 큰 돈을 벌었지만 갑자기 닥쳐온 늑막염 탓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방황하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넨 사람은 아버지였다.당시 그로선 '대전에 내려가 함께 기타를 만들자'는 아버지의 제의를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그만한 재기의 기회도 없었다.1985년 엄씨가(家)의 '기타 제작 대물림'은 이렇게 시작됐다.하지만 도제식으로 진행된 기술 전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아들은 언제나 "이유를설명해 달라"고 맞섰다.교육 방식을 둘러싼 부자 간 갈등은 수년간 이어졌고,급기야 아들은 1990년 새로운 스승을 찾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두 달짜리 '유럽 연수'는 1997년까지 연례행사가 됐다.그에게 아버지가 실습 선생님이었다면 세계적 기타 제작가인 프랑수아 코벨라리와 사토 가쓰오는 이론 선생님이었다.그 즈음에 아버지는 반항심 많은 아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좋은 기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뛰어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했는지 "사명을 네 이름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엄상옥 기타'는 1994년을 기점으로 '엄태창 기타'로 거듭나며 '한국 최고 클래식 기타'라는 타이틀을 이어갔다.1995년부터는 독일 일본 중국 등으로 수출 길도 뚫었다.현재 엄태창 기타를 2대 갖고있는 라만 함펠 독일 트로싱엔 음대교수는 "엄태창기타는 연주하기 매우 편하고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평가했다.엄 사장은 대당 3000만원이 넘는 스페인의 '이그나시오 플레타'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타를 사람들의 방해없이 만들기 위해 2년 뒤 강원도 오지로내려갈 계획이다.산골행(行)에는 2년 전 제자로 입문한 큰 형의 아들인 엄용식씨(37)가 동행할예정이다.용식씨는 독일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가 과정을 밟고 있는 엄 사장의 딸 지수씨를 대신해 '엄씨네 기타가게'의 세 번째 주인으로 낙점받은 상태다.엄 사장은 "조카가 물려받기로 한 만큼 엄씨의 가업도 100년 역사를 바라볼 수있게 됐다"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면 '엄태창 기타'도 '엄용식 기타'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경제.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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